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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때로는 보람과 긍지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들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킬링 타임용 예능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게는 구성과 테크닉을 분석해야 하는 공부거리가 된다. 동이씨가 이 말을 건넸을 때 나는 그 문장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그렇게나 되고 싶던 소설가가 된 후에, 나 역시 소설을 과거처럼 더 이상 즐겁게만 읽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세상에서 ‘개그 콘서트’가 가장 한국자산관리공사 경기지역본부 좋았다던 동이씨만큼이나 소설책을 끼고 다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인터뷰 내내 생각나곤 했다.
동이씨는 올해로 18년차 예능 프로그램 방송작가다. 이름만 들어도 떠올릴 만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했고, 유명 방송인들과도 계속해서 일하고 있으며, 이제는 업계에서 꽤 자리를 잡았다. 대강의 질문들을 보낸 후, 수 주가 지나 만났을 때, 그는 절반밖 수업 진행 에 답을 생각하지 못했으나 우선 되는대로 해보자고 했다. 대본에 적힌 대로 가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대본에 적힌 대로 가는 게 이상한 프로그램도 있다더니, 예능 작가 18년이면 순발력의 제왕이 되는구나 싶었다. 동이씨 말대로 십수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려니 시간이 모자랐다. 웃다가 울다가. 예능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내듯이 예능을 만드는 우리v체크카드 통신비 사람들의 이야기도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다.
동이씨가 예능의 매력에 빠진 건 초등학교 때 개그 프로그램을 즐겨 보면서였다. 화나는 일이 생겨도, 슬픈 일이 있어도 개그를 보면 웃음이 났다. 그즈음 그는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읽었다.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시작은 모든 책의 대출 카드에 자기 이름을 써놓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 보험영업 다. 읽은 책이 많아지면서 늘어난 건 그의 글솜씨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한 국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치른 글쓰기 수행평가에서 동이씨의 글을 소개하면서, 그는 자신에게도 어떤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예능 방송작가를 하겠다고 했을 때, 딸이 부디 무난하고 기복이 적은 일자리를 찾기 바랐던 어머니의 반대에 가장 먼저 부딪혔다. 어머니 여성 직장 는 사람들이 다 재미로 일을 나가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설득했다. 그 말을 듣고도 동이씨는 방송작가 아카데미에 원서를 넣었다. 글 쓰는 사람들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어떻게든 글 쓸 방법을 찾는다. 오직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작가를 향해 나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건 방송작가나 소설가나 완벽히 같은 마음이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새내기 방송작가가 되었을 때, 그는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만만치 않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막내 예능 작가의 삶은 모든 면에서 열악했다. 작가라는 직함이 무색하게 글 한줄 쓰지 못하는 게 막내 작가의 삶이었다. 자료조사와 소품 챙기는 일만으로도 시간은 부족했다. 거기에 매일 꾸중을 들었다. 막내 작가였을 때의 희망은 오직 하루라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세상은 평온한데 매일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덕분에 매일 혼이 나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을 떠올리며 출퇴근을 반복했다. 쏟아지는 꾸중에 스트레스도 늘었다.



고단한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졸고 있는 은동이씨의 모습. 본인 제공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많은 것을 해봤다. 자전거도 타보고 미술 동호회도 나가보고 방 안 가득 슬라임을 사놓고 해보기도 하고 긍정 일기도 써봤다. 당시 그의 긍정 일기에는 이런 내용들이 쓰여 있다. “내가 두시간 자고 출근을 다시 하는 건 이 조직에서 내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야.” “이 시간에도 일을 하러 나가다니 나는 갓생을 살고 있네.” “아휴, 사회에서도 이렇게 돈 안 받고 쓴소리로 교육해주네.”
웬만한 취미들도 다 해봤다. 요리학원도 다녀보고, 터프팅건도 배우고, 제빵도 해봤다. 그렇게나 많은 방법을 써보며 알게 된 게 있다. 스트레스를 없애려고 긍정적인 상황만 일어나길 바랄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그때부터 동이씨는 자신을 공부했다. 자신의 성향, 특성, 스스로 피하거나 화가 나는 순간 같은 것들. 심리학이나 에세이, 마음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덕분에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법보다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법을 깨달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알고 현장에 나가자,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그에게 꿈과도 같았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사라져버렸다. 무대가 사라지니 암흑이 찾아들었다. 웃음을 찾던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 뒤에 동이씨에게 찾아온 기회는 코미디보다 조금 더 유연한 장르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다시 시작하듯 예능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막내 작가 시기를 지나치고 조직의 허리쯤 되는 연차가 되었을 때부터 동이씨의 책임도 조금씩 무거워졌다.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일반인 섭외, 장소나 협찬 섭외 같은 것도 직접 하기 시작했다. 아래 연차를 리드하고, 촬영 구성안을 만들고, 담당하는 연예인들의 습성과 특징들을 센스 있게 알아차리고, 변해가는 상황에 맞춰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일도 해나갔다. 막내 작가일 때는 막내가 가장 어려운 줄 알았는데, 위로 올라가면서 단계별로 다른 힘듦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모든 과정에서 동이씨가 느낀 것은 나를 내세우는 일이 예능계 생활에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거였다. 나를 지우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대본에 넣는 삶, 그러면서도 대본 너머에서 일어날 비상 상황을 늘 염두에 두고 촬영장으로 나가는 삶. 동이씨의 밥벌이 현장은 그 어떤 곳보다 치열했다.
예능 작가는 공동체로 움직인다. 작가들은 피디와 출연진 사이에서 누구보다 유기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메인 작가부터 막내 작가까지 각자 맡은 임무를 최대한 완벽히 수행해야 궤가 맞는다는 걸 안다. 그러나 개그에 한 특장이 있는 사람들이 한데 모였으므로, 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평범하지는 않다. 선배 작가들의 특이한 취향도 맞춰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다반사다. 네트워크로 움직이는 집단이라 선배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 대개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정규화된 조직이 없는 프리랜서들이 모인 집단이니 복지에 취약하기는 이를 데 없다. 회식에 안 나왔다는 이유로 다음날 조직에서 잘려나간 선배부터, 특이한 사물에 집착한 탓에 일주일 만에 해고 통지를 받은 동료 후일담까지, 조직의 취약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는 놀랍도록 담담했다.



예능 프로그램 방송작가 은동이(가명)씨가 바닥에 쭈그려 앉아 스케치북에 글씨를 쓰고 있다. 본인 제공


노동 현장 역시 예전보다야 많이 좋아졌지만, 일의 특성상 감내해야 하는 부분도 여전히 있다고 했다. 기획 단계에 있던 프로그램이 방송도 되지 않거나, 정규 방송으로 편성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므로, 모든 경우의 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열정페이는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단어이고, 어쩔 수 없는 노동력의 소모도 있으며, 작가군 안에서 위계 때문에 생기는 여러 문제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했다.
부침 많은 18년이었지만, 동이씨는 현장에서 버텼다. 그사이에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는 습성이 생겼고, 잊을 수 없을 만큼 큰일을 겪고도 서서히 무감해지는 방법을 터득했으며, 팀에서는 되레 분위기 메이커라는 소리를 들었다. 무섭도록 치고 올라오는 경쟁 방송사를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압도하는 결과도 얻어보았다. 시청률이 높아지면 그 모든 노력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자료 조사에 소품만 챙기던 막내 작가이젠 18년차 베테랑 예능 작가가 되다“나를 내세우는 일은 중요치 않아…잡학다식 재주꾼이 돼야 살아남죠”
“방송계에서 작가는 잡가라는 말이 있어요. 아마 동종업계에 계시면 많이들 공감하실 거예요. 잡학다식한 만능 재주꾼이 되어야 살아남는다는 건데, 작가가 글만 쓰는 줄 아셨다면 적어도 예능 작가 중에 그런 작가는 없을 거예요.”
동이씨는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 버라이어티 장르 등을 두루 거쳐봤다. 리얼 예능이 정말 리얼하느냐고 묻는데, 사실 출연자에게는 대본이 전달되지 않으므로 진짜 리얼이고, 제작진에는 모든 것이 통제되어야 하므로 진짜 리얼이면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힘들었던 순간을 꼽아달라고 했더니, 예능 생태계에 몸담은 연예인들보다 도리어 통제가 어려운 일반인 출연자들과 함께할 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일반인 출연자들은 대중의 평가를 받아본 경험이 훨씬 적어 방송 후 반응도 제각각이다. 때로는 격한 항의를 받기도 한다. 사람들의 입과 눈이 많은 영상 밖 세상에서 예능은 가장 좋은 수다거리 아닌가. 이런 이유로 작가는 출연자와 방송 전후에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직업에 관해 이야기할 때, 동이씨는 여전히 웃음을 가장 첫번째 단어로 꺼내놓는다.
“예능 작가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쓴 대본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나 자신도 즐겁고, 그 대본을 연기하는 연기자의 모습도 즐겁고, 그 연기를 보는 방청객들과 시청자들이 웃는 모습도 즐거웠어요. 내가 만드는 일의 결과물이 나, 연기자, 대중까지 모두를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게 제가 제 직업을 좋아하는 이유예요.”
이 인터뷰를 할 생각이라고 했을 때 동이씨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럼, 너는 네 삶을 혼자서 개척했지.” 그 말로 동이씨는 지난 18년을 인정받는 듯했다고 말했다. 이 기회를 계기 삼아 스스로에게도 쌓아온 시간 동안 고생했다고 말해주었다는 이야기도 남겼다.



동이씨가 자신의 직업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고른 ‘리모컨’. 본인 제공


동이씨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직업을 상징하는 물건을 골라달라고 했다. 그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리모컨’으로 정했다고 했다. 텔레비전 리모컨이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다는 거였다. 7번을 돌려도 내가 만든 결과가, 11번을 돌려도 내가 만든 결과가 나오는 일. 내가 만들지 않았더라도 공부할 거리가 쏟아져 나오는, 내 직업의 상징물. 그렇게 말하며 리모컨을 보여주는 동이씨의 상기된 목소리를 나는 기쁘게 들었다. 자신을 지워내며 만든 결과물들이 이렇게 곳곳에 산적해 있다니, 참으로 멋진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동이씨는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내게 소개해주었다. 사진첩에는 동이씨가 담당한 유명 방송인이 방송 대상을 받은 직후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지만, 카메라 뒤에서 찍은 지친 모습의 수많은 스태프와 현장 컷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화려하고 즐거운 세계 반대편에서 자신을 지워가며 일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노동에 경의를 표하며 동이씨와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웃고 울고 신나게 떠들고 나니 꼬박 한나절이 지나 있었다. 가는 줄 모르고 보낸 시간과 이야기가 동이씨의 18년을 꼭 닮아 있었다.
※ 인터뷰이의 요청에 따라 가명을 사용했음을 알립니다.
최유안 작가

최유안 l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보통 맛’, 장편소설 ‘백 오피스’, ‘새벽의 그림자’ 등을 썼으며, 노근리평화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월급사실주의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