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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은 역사적인 물건이다. 처음에는 인간을 위한 발명품이 아니었다. 1902년 미국의 기술자 윌리스 캐리어가 여름철 인쇄 공장에 습기가 많아 종이가 쭈글쭈글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이후 가정용 에어컨이 보급되며 인간의 역사를 바꿨다. 미국 플로리다 지역처럼 풍광은 좋지만 사람이 살기 어려웠던 고온다습한 곳에도 인구가 늘게끔 만들었다. 탄생 120년이 지난 지금, 에어컨은 ‘신의 선물’이라 불린다. 에어컨 없는 여름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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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은 뜻밖에 기후위기 대응 역사에서도 중요한 계기였다. 1920년대 말 미국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토머스 미즐리가 에어컨 등에 쓸 냉매(열을 흡수해 이동시키는 매개체)로 염화불화탄소(CFCs)를 만들어냈다. 흔히 ‘프레온 가스’라고 불리는 그 물질이다. 캐리어가 에어컨을 만들 당시 사용하던 암모니아 계열의 냉매에 비해 무색 마지리 ·무취하고 부식성이 적어 발명 당시에는 ‘꿈의 물질’로 불렸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장고와 에어컨이 대중화하는 데에 프레온 가스의 역할이 컸다.


1974년 중대 사건이 터졌다. 캘리포니아 대학 몰리나 박사와 롤런드 박사가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논문을 과학잡지 〈네이처〉에 신실하신 발표했다. 오존층은 태양으로부터 방출되는 자외선을 흡수하고 지구의 기온을 유지시킨다. 인간과 지구가 생존하기 위해 결코 파괴돼서는 안 되는 존재다. 프레온 가스가 대기권에서 분해되지 않고 오존층이 있는 성층권까지 올라가 오존 분자를 파괴한다는 것이 이들의 연구 결과였다.


발표 초기에는 이 연구 주식합자회사 결과를 믿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았다.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 “터무니없는 헛소리”라는 비난이 화학산업계,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쏟아졌다. 심지어 이 연구자들이 미국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스파이라고 의심하는 이도 있었다(〈오존층 파괴를 막은 영웅 마리오 몰리나〉, 두레, 2021).


그러나 10여 근로자전세자금대출 연장 년 뒤인 1985년 남극 오존층을 정기적으로 관측하고 있는 영국 조사팀에 의해 실제 오존층 파괴 현상이 발견되자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사상 처음으로 지구 생태계 문제를 놓고 세계 각국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1987년 프레온 가스 등 오존층 파괴 물질 사용 금지를 약속한 ‘몬트리올 의정서’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에어컨과 냉장고의 폐해로부터 국제적인 기후위기 대응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여기까지는 기후 및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대체로 알 만한 이야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프레온 가스의 대체재로 1990년대부터 2세대 냉매로 불리는 ‘수소불화탄소(HFCs)’가 쓰이기 시작했다. 화학산업계에서 개발한 수소불화탄소는 소화기, 건축용 단열재, 의료기기 등에 지금도 쓰이는 물질이다.


그런데 수소불화탄소는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대신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지구온난화 지수(GWP·여러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 수치)가 이산화탄소보다 최대 약 1만2400배까지 높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가 냉매가 주입된 냉동공조기기 사용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항공산업 전체 배출량의 두 배에 달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1997년 교토의정서는 수소불화탄소를 이산화탄소 등과 함께 감축해야 할 6대 온실가스로 지정했다. 이후 점진적인 논의 끝에 2016년 국제사회는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수소불화탄소 생산 및 사용을 전면 규제하는 키갈리 개정서(Kigali Amendment)를 체결했다. 현재 약 190개 국가가 키갈리 개정서를 비준했는데, 한국은 2023년에 키갈리 개정서를 비준했다. OECD 회원국 중 38개국 중 36번째로, 경제 수준과 위상에 비해 늦은 대응이었다. 일본은 2018년, 중국은 2021년에 비준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2045년까지 수소불화탄소를 현재 수준 대비 80% 감축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자연 냉매’ 상용화

키갈리 개정서 이후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냉매는 낯선 주제다. 에어컨의 냉매는 주로 실외기에 들어 있는데, 에어컨을 장기간 사용하면서 서서히 누출되거나 폐기 처분 과정에서 관리 소홀로 대기 중에 퍼진다. 특히 일부 폐자원 수거업체에서 냉매를 그냥 터뜨려 버리는 일도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상업용 대형 기기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가정용 기기는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의 슈퍼마켓 기업인 에데카는 자연 냉매를 활용한 냉동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dpa



‘자연 냉매’라는 게 있다. 프레온 가스나 수소불화탄소 같은 인공 냉매와 달리 지구상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암모니아·이산화탄소 등을 이용해 만드는 냉매다. 수소불화탄소에 비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우 적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과거 캐리어의 에어컨 발명 때 쓰였던 자연 냉매는 유독성과 부식성 등 문제 때문에 프레온 가스 개발 이후 사라졌다. 그러나 수소불화탄소의 문제점이 공론화하고 기술개발이 진행되면서 최근 관련 산업이 성장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아직 연구개발 단계이지만, 유럽에서는 상용화도 이루어졌다. 예컨대 독일 최대 슈퍼마켓 기업인 에데카(EDEKA)는 이산화탄소 자연 냉매를 활용한 냉동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자연 냉매를 지금 쓰는 기기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정이든 산업 현장이든 자연 냉매용 기기로 설비를 교체해야 한다.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난 1월8일 국회에서 열린 ‘탄소중립 실현, HFCs 냉매 전환 방향’ 토론회에서 라재봉 한국식품콜드체인협회 전무는 “자연 냉매나 지구온난화 지수가 낮은 냉매의 냉동장치는 일반 장치에 비해 1.2~3.8배 이상 투자비용이 필요하다.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려면)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라고 밝혔다.


좀 더 쉬운 길도 있다. 생산부터 재사용 후 폐기에 이르는 ‘전 주기’에서 수소불화탄소가 누출되지 않도록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다. 냉매는 안전하게 관리·회수만 되면 재사용이 가능하다. 물론 여기에도 걸림돌이 있다. 냉매를 회수할 폐자원 수거업체 대다수가 영세하기 때문에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수소불화탄소 관리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배출량 감축 등 근본 목표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이행 지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의 박범철 HFCs 담당 연구원은 “수소불화탄소가 온실가스의 ‘숨은 복병’이었음이 드러난 만큼 정부가 자연 냉매 전환 로드맵과 지원 정책을 제시하고, 냉매 회수율과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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