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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군 서종면 묘원에 놓인 고인의 영정 사진. 필자 제공


자동차산업 구조 변화 보면서 ‘임금 중시’ 노동운동 한계 절감 2001년 민주노동자 연대 만들고 8년 뒤엔 희망연대노조 창립해 비정규 노동자 투쟁 진두지휘 2015년 집중교섭 뒤 뇌종양 판정“까칠하다 못해 괴팍했던 고인을 사람들은 무척 아끼고 사랑했죠” 노동운동가 고 이종탁 동지가 10년의 투병 끝에 지난 3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58이었다. 고인이 생전에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희망연대노동조합(현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의 조합원 대출모집 들과 그를 아끼던 많은 이들이 떠나는 길을 배웅했다. 처음 만났을 때, 서른 살 즈음이던 그는 자동차산업을 중심으로 현장 노동자들과 결합하는 정책가이자 연구자였다. 기아자동차의 한 노동자는 “종탁이를 만나 현장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면, 종탁이가 다시 올 때 그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정책과 이론이 돼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노동현장을 기대출과다자 대출 면밀히 관찰하며 집요하게 연구하고 분석한 그의 노력과 함께, 영민하고 좋은 통찰력을 가진 능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동차산업 구조의 변화에 따라 노사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보며 임금과 복지에 매몰되는 노동운동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그를 움직였다. 하나는 노동운동에 산업 전반에 대한 시야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는 2005년 리드코프 모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설립까지 이어졌다. 다른 하나는 사업장 밖 노동자의 일상이 구성되는 지역사회와 노동자 투쟁이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2001년 민주노동자연대를 창립하고 대표직을 맡았다. 필자는 ‘삶·현장·투쟁의 공동체’를 모토로 내세운 이 작은 단체의 상근자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함께 활동하면서 본 이종탁 선형시불변 은 ‘끊임없이 일을 벌이는 사람’이었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 다들 안 될 거라며 고개를 젓는 일들을 기획해 제안하곤 했다.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반전운동, 지역연대, 사회공공성투쟁, 철도 역무노동자와 지역주민들이 함께 하는 민자역사 공공성 투쟁 등을 주도하거나 결합했다. 이런 운동을 확산하고 이론적으로 다듬기 위한 논의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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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2014년 노숙농성을 이어가던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필자 제공


그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활동했던 희망연대노조는 이런 노력 끝에 설립되었다. 시작은 미미했다. 2009년 12월 그를 포함한 아홉 명의 조합원이 창립총회를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 더 낮은 곳을 향한 연대, 지역사회와 노동조합의 결합, …. 듣기 좋은 말이지만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어렵다. 그는 희망연대노조와 함께 이를 현실화하고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의 전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그가 공동위원장 임기를 시작한 2013년 1월은 콜센터와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이 예견돼 있었고, 노동자 지역사회연대 등의 사업을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위한 사단법인 설립이 계획돼 있었다. 내내 고될 것이 뻔히 보이는 그때 그가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대중조직 활동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그였기에 염려도 많았다. 결과적으로 이 모두가 기우일 뿐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치고 빛나던 시기였다. 카리스마와 허물없는 모습으로 조합원들에게 사랑받았다. 투쟁 현장에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합원들을 하나로 묶어내곤 했다. 필자는 투쟁의 활로를 찾아야 할 때, 교섭의 묘수가 필요할 때, 책임이 버거울 때 그를 많이 의지했다. 2013년 전개된 씨앤앰(현 딜라이브)‧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하나의 원청에 딸린 수십 개의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일거에 노조 설립과 교섭에 성공한 한국 노동운동 사상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이 투쟁으로 씨앤앰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 노동자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하후상박 임금 인상, 지역사회단체들의 적극적인 연대라는 성과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고난은 2014년부터였다. 씨앤앰 비정규직 109명의 해고, 티브로드 원·하청의 노동조건 후퇴 시도에 맞서는 투쟁과 함께, 재벌기업 에스케이와 엘지의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이 이어졌다. 전국적으로 200개에 가까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4곳의 원청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을 동시에 벌이고 있었고, 이종탁 위원장은 그 투쟁을 진두지휘했다. 1년 내내 파업, 노숙농성, 고공농성이 이어졌다. 그해 마지막 날 해고자 복직과 함께 고공농성을 마무리했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쇠할 대로 쇠한 상태였다.



2015년 4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종료된 직후 조합원들과 함께. 이미 몸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앞 가운데가 고인. 필자 제공





2018년 투병 중인 고인(가운데)을 방문한 노동운동 동지들과 함께. 필자 제공


하지만 에스케이브로드밴드와 엘지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남아 있었고, 이듬해 2월 또다시 고공농성이 시작됐다. 건강을 챙겨야 할 그가 에스케이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지부의 집중교섭장에 가서 앉았고, 한달 동안 합숙하면서 고강도의 교섭이 진행됐다. 그는 앉아있기도 힘들어 누운 채로 회의를 하고, 갈수록 수척해지고 까매져가다 못해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 교섭이 끝났다. 그러고도 다시 며칠 후에 엘지유플러스 비정규직 지부 집중교섭을 이끌었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까지 모두 쏟아부어 교섭을 마무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의식불명 상태라는 연락을 받았다. 뇌종양이었다. 그가 투병하는 10년간 꾸준히 사람들이 찾았다. ‘탁스데이’라는 날을 정해 해마다 경치 좋은 곳에 데리고 가 1박2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좋은 말을 해주는 법이 별로 없었고 까칠하다 못해 괴팍하기까지 했던 그를 사람들은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임종을 며칠 앞두고 그를 찾은 친우가 농담 삼아 마지막 지침을 달라고 했을 때 그는 “잘 먹고 잘 살라고 해!”라고 했단다. 참으로 이종탁답다. 그의 ‘마지막 지침’은 ‘더불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위해’라는 문구로 그의 묘비에 적혔다. 김하늬/전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