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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입니다.”
카미유 로랑스의 소설, ‘여자’의 첫 문장이다. 여자와 딸. 두 단어만으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가? 어쩌면 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가? 그렇다면 그 의심을 의심해보자. 딸이자 여자이자 어머니인 한 존재의 이야기는 왜 ‘이미 아는 이야기’처럼 느껴질까? 왜 ‘딸로 태어났다’는 말이 고정된 운명처럼 읽히는 걸까?
로랑스의 ‘여자’는 주인공, 로랑스 바라케의 생애를 통해 ‘딸’로 태어난 순간부터 그 이름 아래 부여되는 역할과 기대, 억압, 저항의 시간을 이야기한다이테크건설 주식
. 여성의 삶을 다루는 소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카미유 로랑스의 소설이 돋보이는 이유는 ‘딸’이라는 단어에 담긴 사회적, 역사적, 언어적 함의를 다루기 때문이다. 작가는 단어 안에 내포된 관계성과 고정관념을 모두 펼쳐 보이며, 우리의 인식과 무의식이 어떻게 언어에 뿌리를 두고 여성의 삶을 규정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소설 속 ‘딸입니다’는 동서 주식
단지 출생의 보고가 아니다. 사회적 위치로의 소환이다. 이름도 갖기 전에 불리는 역할, 하나의 구조, 운명이다. 딸로 태어나 어머니가 된 카미유 로랑스는 작가 자신의 삶을 이 소설의 재료로 삼았다. 그저 개인적인 삶을 고백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 삶이 ‘여성’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어떻게 반복되고, 내면화되고 때로는 전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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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소설 ‘인덱스’(Index)로 데뷔한 카미유 로랑스는 소설가이자 아카데미 공쿠르 회원으로,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다. 로랑스는 데뷔작부터 언어, 정체성, 여성의 위치에 대한 철학적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주목받았다.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문학적 실험에 가까웠는데, 1995년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소설 ‘필립’을 기점으로주식투자원칙
전환점을 맞이한다. 카미유 로랑스의 ‘나를 쓰기’가 시작된 것이다.
로랑스의 글쓰기는 서사 형식상 오토픽션(자전소설)으로 분류된다. 오토픽션이란 용어는 1977년, 세르주 두브로브스키가 자신의 소설, ‘아들’(Fils)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됐다. 자서전이 아닌, 삶의 현실을 전달하되, 진실의 수단이 아니라 허구의 수단을 통해 서술하는 강세주식
글. 다시 말해 사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문학적 상상력과 언어의 실험을 적극 활용한 글쓰기다. 오토픽션은 단순히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탐색한다. 한마디로 고백이 아닌 구성, 기억이 아닌 기억의 서사화, 사실이 아닌 문학적 진실을 추구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겠다.
로랑스는 ‘여자’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자전적 경험을 문학적으로 재현해왔다. 하지만 로랑스는 자신의 글쓰기를 오토픽션이라고 이르기보다, ‘나를 쓰기’라고 말하길 선호한다. 오토픽션이 허구적 구성을 위해 자기 자신과의 거리를 전제로 한다면, 로랑스에게 글쓰기는 그 거리조차 허용하지 않는, 곧 삶 자체를 쓰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이 고통을 ‘허구’라고 이를 수 있을까? 글쓰기는 진실을 우회해서 말하는 일일까, 아니면 그 자체를 언어로 살아내는 일일까? 이 두 질문이야말로 카미유 로랑스의 글쓰기가 출발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왜 로랑스는 자신의 삶을 쓰기로 했을까?
1994년 그녀는 태어난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아들의 죽음을 겪는다. 그녀는 그 사건을 바탕으로 소설 ‘필립’을 썼고, 그 책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더는 순수한 허구로 글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자신의 비극을 쓰는 일은 현실과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일이고, 그 경험을 통해 삶의 어떤 국면은 허구의 형식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후 로랑스의 글쓰기는 자전적 경험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나’를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한다. 로랑스의 ‘나’는 단순한 개인이 아닌, 여성이라는 젠더, 사회적 조건 아래 위치한 존재이며, 그녀의 개인적 이야기는 동시대를 사는 이들과 연결되며 공동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글쓰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바로, 나의 경험 안에는 반드시 타자의 삶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토픽션은 자신의 서사에 타인의 삶을 함부로 이용하지 않도록 끊임없는 자기 점검과 윤리적 태도를 요구한다.
최근 한국 문학 안에서도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쓸 수 있는가?’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소설이 허구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민감하게 인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어디까지 쓸 수 있을까? 명확한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작가만의 윤리적 기준은 필요하다. 카미유 로랑스는 누군가에게 상처나 해가 될 경우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과감히 변형하거나 삭제한다고 했다. 타인의 비밀을 밝히거나, 수치심을 줄 수 있는 글은 쓰지 않으며, 쓸 권리가 있다고 해도 쓰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창작자가 로랑스의 말에 동의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윤리’에 대한 고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이 단지 공상이나 거짓이 아니라 진짜 삶과 진실을 다루는 장르라면, 그에 따른 책임 역시 무겁게 여겨져야 하지 않을까.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표출하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이야기의 쓸모와 방향을 묻고 탐구하는 일이다. ‘나를 쓰기’는 거울 앞에서 나를 비추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해 창을 여는 일이고, 그 창 너머에 누군가의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때, 나의 이야기는 공동의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신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