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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에 있는 청남대 자전거길은 하이킹족 사이에서 라이딩 명소로 통한다. 문의사거리에서 시작되는 이 길을 자전거로 가다 청남대 쪽으로 꺾지 않고 직진하면 상당구 문의면 마동리가 나온다. 일부 하이킹족은 일명 ‘마동리 코스’를 선호하는데, 그곳에 자연과 예술이 숨 쉬는 문화공간 ‘마동창작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문의면 마을버스 종점 옆, 고요한 시골 마을에 둥지를 튼 마동창작마을은 폐교를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1991년 문을 닫은 문의초등학교 회서분교가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예술을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열린 미술관으로 영어로 수업 바뀌었다.



서양화가 이홍원 작가


폐교를 예술 공간으로 되살린 이는 서양화가 이홍원 작가다. 1995년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는 넓고 조용한 작업 공간을 찾아 산속 폐교에 터를 잡았다. 그는 “서울은 집세도 비싸고 중개업체 작업 공간도 좁아 살기 힘들었다”며 “무엇보다 경쟁이 치열한 분위기가 내 성향과 맞지 않아 귀촌을 결정했다”고 회상했다. 여러 장소를 물색하던 중 후배 소개로 문의초 회서분교를 만났다.
그는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단숨에 마음을 빼앗겼다. 오랫동안 사람 발길이 끊긴 학교 부지는 폐허처럼 방치돼 있었고 교실 바닥엔 개똥이 굴러다닐 정도였 동양종합금융 지만, 그는 그런 시골스러운 풍경마저 정겹게 느꼈다. 조용하고 한적한 진입로에 들어서는 순간 도시의 소음과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치기에 적합한 장소라고 직감했다.



복도에 이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1600-5500처음에는 5명의 예술가들과 공동으로 폐교를 임차해 각자의 작업실로 꾸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예술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나둘 이곳을 떠났고, 결국 그만 홀로 남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작가는 1999년 이곳의 소유권자로 이름을 올렸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 경매로 나온 폐교 부지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국민은행 마이너스통장 이자 않자 그가 인수자로 나선 것이다. 마동창작마을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는 폐교를 인수한 뒤 리모델링에 착수했다. 기존 교문과 담장을 철거해 개방감을 살렸고,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은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예술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정원 중심에는 이곳 창립 멤버 중 1명인 고 송일상 조각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독특한 조각품들을 배경으로 웨딩사진을 찍으려는 예비 신랑·신부가 많이 찾는 장소다. 방문객들은 “한번 오면 또 오게 되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7900㎡(2400평)의 학교 터에 들어서 있던 본관과 사택, 숙직실, 화장실 등은 다양한 역할을 배정받았다. 본관 교실은 이 작가의 작업실과 전시실, 카페 등으로 변신했다. 사택은 손님들이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사랑방이 됐다. 이 작가는 숙직실 건물을 헐고 부부가 생활하는 살림집을 지었다.
교실을 개조한 전시실에는 그가 이곳에 들어온 뒤 30년간 그려온 작품 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이 작가는 따뜻한 색감을 사용해 시대의 이야기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해학과 풍자가 담긴 화풍 때문인지 서양화가인 그의 작품엔 한국화의 정취가 짙게 묻어난다. 그는 “재료보다 정신이 중요하다”며 자신을 한국화 작가로 규정한다.



카페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커피를 직접 내려 마셔도 되고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있다.


카페는 자율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카페지기가 없어 손님들이 직접 바리스타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처음 찾는 방문객들은 당황스러워하지만, 단골 손님들은 오히려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아서 자주 찾는다고 한다. 미술관을 찾은 한 하이킹족은 출출하면 가볍게 컵라면도 먹을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이 작가 부인이 직접 담근 김치도 맛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마동창작마을은 초기에 지역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활발히 열었다. 미술 전시와 뮤지션들의 공연을 같이 즐길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 클래식부터 대중음악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숲속 음악회’ 등으로 마동리 주민들과 예술을 나누는 시간을 이어갔다. 하지만 주민들이 마을을 하나둘 떠나면서 이들 행사는 무기한 연기됐다. 그는 마을 활성화를 위해 행사를 다시 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모든 준비를 혼자 감당하기엔 부담이 커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며 재개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야외에는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이 작가는 “목숨을 다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다면 그 자체로 성공”이라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고집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내년에는 청주와 서울에서 동시에 대형 전시를 열 계획이다. 마동창작마을에서 30년간 작업해온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자신의 예술 인생을 되돌아보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긴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 알아서 놀다 가면 되는 곳”이라고 찾아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은 그는 “잠시 쉬었다 가는 사람들, 뛰노는 아이들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 덕분에 이 공간은 계속 살아 있다”며 미소 지었다.
청주=박자원 프리랜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