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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도사우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5-07-13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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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서울의 어느 요정. 두 남자, 양주를 마시면서 밀담을 나누고 있다. 상 위에 ‘간첩단 사건’ 자료가 놓여 있다.
“인혁당 민청학련 보도지침 폭로, 인천사태 배후조종자디요.”
“직책도 변변찮은 놈으로 뭘 하시려고?”
“고거래 김영삼이 단식성명서, 김대중이 김영삼이 8·15 공동선언문 작성자입네다.”
“이것들을 한 보따리에 엮으시겠다?”
“고거이, 김일성이 끄나풀로 밝혀지문 대통령 직선제 개나발 부는 간나새끼들 단칼에 격멸하디요.”
“대단하십니다. 청와대 주인은 바뀌어도 남영동은 그대로라더니, 이놈 이거 빨리 검거해이난희
서 대학가 열리기 전에 정리합시다.”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박처원)과 안기부장(장세동)의 밀담, 영화 ‘1987’ 초반에 나오는 대목이다. 간첩단 수괴로, 인혁당 민청학련 인천사태 배후조종자로, 단식성명서 공동선언문을 작성한 ‘이놈’으로 등장하는 인물, 배우 설경구가 분한 김정남이다. 영화는 사실의 뼈대 위에 허구의 살을 붙여 재미를 살렸덕양산업 주식
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막후 거목 김정남, 1942년 대전 출생. 서울 양재동 ‘뭉티기’ 집에서 만났다. 팔순 넘어도 정정하고 맑은 얼굴, 큰 눈꺼풀이 눈을 반쯤 숨겨주고 있다. 선생은 만년에 문명교류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그 후임 장석 시인이 동석해 점심에 반주를 겸하면서 차곡차곡 5시간 얘기를 나누었다. 차 마시고 곡차 마시고, 오락실게임
그런 것을 ‘차곡차곡’이라 한다. 김정남 이야기는 40년 민주화운동의 역정을 담은 한인섭의 대담집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2020)에 잘 정리되어 있어 여러 대목, 그 책에 의지했다.
두가지가 궁금했다. 평생을 일이관지, 사선을 넘나들며 흔들리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은, 그 원천은 무엇일까. 또 변변한 직업도 없이 끝없는 수배와 투옥 속릴게임 공략법
에서, 딸 넷을 낳고 생계는 어떻게 꾸렸을까, 하는 것이었다.
“고3 때 4·19를 겪었어요. 제가 대전고를 나왔는데, 4·19 고교생 시위는 경북고가 제일 먼저고, 두번째가 대전고예요. 거리에 나서면서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벅찬 느낌, 저절로 주먹이 쥐어지고, 가슴에선 뭔가 뻑뻑하게 차오르고, 눈에서는 괜히 눈물이 나오고, 목은 막히고릴게임 종류
, 말할 수 없는 벅찬 감격 같은, 이것이 바로 정의감인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반은 시대가 밀고, 반은 내 발길로 가는 이 대목, 낯이 익다. 동아투위가 고교 때 4·19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고 그 정신이 투쟁 50년을 이끌었다는 것(박종만), 저절로 주먹이 쥐어지고 가슴에서 뭔가 뻑뻑하게 차오르는 그것은 분노, 뒤따르는 광주 5·18과 숱한 민중의 저항이 거기서 출발한다.
당시 매년 발표되던 4·19 선언문의 ‘제4 선언문’을 그가 썼다. ‘4월의 하늘은 이토록 청명한데 우리를 둘러싼 대기는 어이 이토록 암울한가.’ 서울대 정치학과 3학년이던 1963년, 이 선언문을 쓰고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이듬해 6·3학생운동과 ‘7·6불꽃회’ 사건으로 첫 구속 된다. ‘불꽃’은 레닌의 지하 신문 ‘이스크라’에서 따온 말이다. 당국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결집체인 불꽃회가 학생 데모를 배후 조종했다”면서 김정강 김정남 등이 주축이 된 계보도를 함께 발표한다. 한달쯤 뒤에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8.14)이 터진다. 그러니까 불꽃회와 인혁당은 같은 뿌리이며, 영화에서 그 배후 조종의 수괴로 김정남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어 서울대 사범대 독서회 사건으로 2년여 수배 생활을 하다가 1970년 체포되어 재차 투옥된다. 각각 9개월씩 옥살이했다.
그 수배 와중에 장사를 했다. “아예 삶의 방식을 바꿔 보고 싶었어요. 지식인이나 혁신계 정치 건달 같은 삶을 청산하고 생활인으로 성공해보려고 리어카를 하나 샀습니다. 그때 은평구 일대가 다 채소밭이었어요. 새벽에 이슬 맞은 배추를 밭에서 떼어 연신내 시장에 내다 파는 도매상이죠. 한 6개월 하다 보니 사람이 좀 쩨쩨해지더라고. 그러다 리어카 도둑으로 몰려 서대문경찰서를 다녀온 뒤로 접었어요. 한때 지식인들이 무슨 노동자 한다고 노동판에 좀 들어가고 그랬어요. 지식인이야 갔다가 나 글 써야겠다고 나오면 되는데, 노동판에서 끝을 봐야 하는 사람은 뭐가 되냐는 거죠. “너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괜히 쇼하는 거지. 네가 진짜 온몸을 바쳐서 들어갈 생각이 아니면 하지 마라” 그랬는데, 그게 채소 장사하면서 배운 거예요.”
1971년 신상우 신민당 의원의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대정부 질의서를 써 준 인연으로 ‘정치 건달’의 길에 들어선다. 이후 보이지 않는 보좌관 역할을 하면서 인연은 지속되고 나중에 와이에스(YS·김영삼의 애칭)로 연결된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여파로 지학순 주교가 구속된다. 김지하에게 100여만원 ‘공작금’을 준 혐의, 그리고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양심선언. 김정남은 옥바라지하면서 구명운동의 중심에 선다.
“천주교에서 감옥을 가본 사람이 있나, 그래서 경험 많은 내가 옥바라지를 맡았지. 지 주교 양심선언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때까지 천주교와 세상은 다른 길을 걸었어요. 우리도 교회 담을 넘지 않을 테니 너희도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마라, 성속 분리 같은 거죠. 그런데 주교가 구속되어버린 거라. 이때 김수환 추기경이 박정희를 만납니다. 박정희가 교회가 하느님이나 믿지 왜 정치에 관여하느냐 하니까 추기경이 그래요,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우리의 관심사다, 그래서 풀려나는데 지 주교가 양심선언을 해버린 거죠.”
천주교가 들어온 지 200년 만에 처음으로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 사건이라고 그는 평했다. 이어 김수환 김승훈 함세웅,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들이 나오면서 그해 9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출범한다.
생활비는 어찌하셨냐고 물었다. “신상우 의원이 거의 매달 20만원, 지금으로 하면 200만원쯤 될 거예요. 원고료 수고비 같은 것인데 10년 가까이 그랬으니 참 고마운 분이죠. 지 주교가 석방된 뒤로 매달 서울에 오셨는데 일부러 나를 찾아 꼭 10만원씩 주셨어요. 지금 100만원 될 겁니다.” 그 돈으로 애들 학교 다니고 최소한의 집안 살림도 꾸릴 수 있었고, 그렇게 1970~80년대를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도망 다닐 때 돈을 받는 건 쉬워도 주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받은 사람이 잡혀 들어가면 고문에…, 그 후유증이 엄청나지요. 내가 이부영 도피 방조 혐의로 1987년 무렵 도망 다닐 때 추기경이 인편으로 20만원을 보내주신 적이 있어요. 수배 받으면 제일 필요한 게 돈인데, 그 고마움은 평생 잊지 못하죠. 제가 이돈명 변호사한테 배운 게 있어요. 자기는 가장 깨끗한 돈을 애들 교육을 위해 쓴다는 거야. 가령 무료 변론했는데 뒤에 의뢰인 가족이 찾아와서 꼬깃꼬깃 손에 쥐여주는 돈이 5만원 들어왔다 하면, 그 돈은 각별하니 따로 모았다가 애들 등록금에 쓴다고 해요. 나도 추기경한테 받은 돈을 끝까지 안 쓰고 갖고 있다가 수배 풀린 뒤에 아이들 학비로 쓴 일이 있어요. 너희들한테 주는 이 돈은 이만저만한 돈이라고 경위를 얘기하고 줬습니다.”
돈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들려달라 했다.
“김홍명 교수라고, 서강대 있다가 나중에 조선대 총장도 했죠. 내가 수배 중에 그 친구 만나서 저녁 먹고 헤어지려는 참에 “형님 도망 다니는 데 필요할 텐데”라면서 호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더라고요. 얼마인가 싶은데 꺼내 볼 수는 없고, 주머니에 있는 채로 세어보니까 다섯장이더라고. 아, 5만원인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꺼내 보니까 이게 2만3천원이야. 1만원권 두장에 1천원짜리 세장. 적다고 실망한 게 아니라 약간 코끝이 찡한 게 내가 감탄했습니다. 제 차비까지 다 털어서 나를 준 거잖아요.”
민주화의 뒷길에서 저렇게 수수하는 돈에는, 공자의 인도 들어 있고, 맹자의 의도 들어 있다. 주고 싶어도 나중에 자기를 옭아맬 수도 있는 것이라, 신념과 용기 없이는 행하기 어렵다. 어찌 2만3천 원에 그칠 것인가, 그 무게가 천금이다. 신에게서 가까이 있는 천주교 성직자들로부터 도피자금을 받아서 그랬는지, 김정남은 두번의 투옥 이후 20여년, 어두운 시대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도 한번도 붙잡히지 않았다. 길 없는 길, 민주화운동은 그렇게 끊어질 듯 이어졌다.



이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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